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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박종구의 中國 인물 이야기]<199> 송 태종

  • 작성자:홍보실
  • 등록일2019-09-24
  • 조회수 : 595

979년 당나라 이어 중국 재통일

 

조광의(趙匡義, 939~997)는 북송의 2대 황제로 묘호는 태종이다. 송태조 조광윤의 친동생으로 북송의 지배체제를 확립했다. 979년 당나라에 이어 중국을 재통일했다.

무관 조홍은과 두씨 사이에 태어났고 송태조 조광윤의 실제(?弟)다. 조광윤이 후한과 후주의 군관으로 활약하는 동안 충실히 형을 보좌했다. 960년 조광윤이 개봉의 외곽인 진교에서 송의 황제로 즉위하는데 조보 등과 함께 막후에서 많은 역할을 수행했다. 개보 9년(976) 10월 태조가 급사했다. 조덕소와 조덕방이라는 장성한 두 아들이 있었지만 동생인 조광의가 2대 황제인 태종으로 즉위했다. 동생의 즉위에 관해서는 많은 의문이 제기되었다. 촉영부성(燭影斧聲)이 대표적인 고사다. 눈오는 밤 동생이 휘두른 도끼에 맞아 형이 죽었다는 내용이다. 실상은 자신을 황제로 옹립하는데 큰 공을 세운 동생에게 제위를 넘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모친인 두 태후가 생존시 이와 같은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소위 금궤지맹이다. 태종의 계승 문제는 이제는 천재불결(千載不決)의 의심이다. 아들 조덕소와 조덕방은 영흥군절도사와 서산남로절도사가 되었는데 각각 977년, 981년 죽었다. 조덕소는 황제 옹립 움직임과 관련되어 자살을 강요당했다고 전해진다. 


태조의 후궁 화예부인을 둘러싼 형제간의 갈등설도 심심치 않게 회자된다. 후촉의 군주 맹창의 부인이었는데 시와 글쓰기에 능했다고 한다. 후촉을 멸한 후 태조가 자신의 후궁으로 삼았다. 동생인 태종이 눈독을 들여 둘 사이가 나빠졌고 그 와중에 태조가 급사해 타살설이 불거져 나왔다는 내용이다. 신빙성 여부는 알 길이 없다.

태종은 형의 정책을 충실히 계승해 북송의 통치기반을 굳건히 했다는 공적이 인정된다. 무엇보다도 문관정치가 확립되었다. 태조의 뜻을 받들어 문관 선발 제도를 정비했다. 취임 첫해 500명을 합격시켰다. 태조 재위기간 350명의 과거 급제자가 배출된 반면 태종 재위기간 5816명의 급제자가 배출되었다. 게다가 대부분 한미한 가문 출신이었다. 진사 중심의 과거제도는 그의 아들인 진종때도 계속 이어져 1000년 급제자 수가 무려 1538명에 달했다. 중국 과거제도 역사상 가장 많은 급제자 수로 기록된다.

중국의 재통일 작업도 태종때 마무리되었다. 태조가 정복하지 못한 오대십국 중 오, 월, 북한을 멸망시켜 979년 중국을 재통일했다. 남당의 후주 이욱은 유명한 시인으로 개봉에 포로로 잡혀왔지만 사대부에게 인기가 많았다. 질투심에 이욱에게 사약을 내린 것은 재통일 과정의 씁쓸한 뒷이야기 중 하나다.

요나라가 점령한 연운 16주를 회복하기 위해 요나라와 싸움을 벌였지만 이렇다할 성과는 없었다. 오대를 멸한 후 하북의 유주를 공격했다. 베이징 주변의 고량하에서 양 군이 충돌했는데 거란의 유격전에 말려 참패했다. 986년 재차 북벌을 추진했지만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송의 장수 양복이 요의 계략에 말려 생포되어 옥에서 죽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북방을 정복하려는 꿈을 포기하고 요와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실리를 택했다. 1004년 양국이 전연의 맹을 맺어 40여년간 평화를 유지한 것은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군인정치가 문치주의로 확실하게 전환된 것도 태조때의 일이다. 당 왕조를 폐망으로 이끈 절도사 제도를 약화시키고 중앙의 직접적인 통제를 강화했다. 경찰 업무를 중앙이 보낸 현위가 담당토록 하고 전운사를 두어 징세 업무를 관할토록 했다. 국가 재정업무는 삼사(三司)라는 독립된 기관의 관할하에 두었고 추밀원은 군사 업무에 관해 발언권이 강했다. 대규모 출판 사업을 벌여 ‘고상하고 박식한 주군’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재임기간 중 유교 경전을 지속적으로 출판했고 백과사전류의 관찬 유서(類書) 간행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죽기 전해인 996년 ‘권위있는 고전 도서 판본을 준비하라’는 명을 내렸다. 태종은 997년 59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재임기간 중 송의 지배체제가 확립되었고 왕조는 개봉을 중심으로 문화, 경제적 번영기에 접어들었다.

< 초당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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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일자 : 2019-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