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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포럼-박종구 초당대 총장] 탄력받는 영국의 브렉시트

  • 작성자:홍보실
  • 등록일2019-12-27
  • 조회수 : 563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가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갔다. 보리스 존슨 총리가 이끄는 집권 보수당은 12.12 총선에서 야당인 노동당에 압승했다. 보수당은 365석을 얻어 1987년 대처 총리 승리 이후 32년만의 대승을 기록했다. 반면에 노동당은 1935년 이후 최악의 참패다. 노동당은 지난 10년간 네 번 연속 총선에서 패배해 당의 존립 자체가 도전받게 됐다.

 

 

존슨 총리의 승부수가 주효했다. 보수당은 브렉시트 완수(Get Brexit Done)이라는 단순한 선거구호로 정권의 신임을 걸었다. 2016년 영국 유권자는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결정했다. 그러나 테레사 메이 전 총리가 마련한 유럽연합(EU)과의 합의안이 하원에서 3번이나 부결되면서 브렉시트 피로증후군이 심화됐다. 더 이상 찬반 논란으로 국론이 분열되기를 원치 않은 영국민의 결정이 존슨 승리의 추동력이 됐다.

 

이번 선거는 존슨과 노동당 지도자 제레미 코빈에 대한 신임투표로 볼 수 있다. 유권자들은 ‘코빈 불신’이라는 표심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코빈은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로 자처하면서 현재의 썩은 시스템을 갈아치워야 한다는 선동적 주장을 계속했다. 존슨이 브렉시트에 올인한 반면 코빈은 모호한 입장을 견지해 정치인으로서의 신뢰를 크게 깎아 먹었다. 노동당의 과격한 선거 공약도 유권자들을 등돌리게 만들었다. 철도, 수도 등 국가 기간산업 국유화, 법인세와 최저임금 인상, 대학 등록금 폐지 등 식상한 ‘큰 정부론’을 되풀이 했다. 노동당 공약이 이행되려면 연 830억파운드(약 131조원)가 소요되는 재원 조달 문제도 아킬레스건이 됐다. 1960-70년대 영국민을 볼모로 한 과격한 노동쟁의나 70년대 말 도시 쓰레기가 산적했던 ‘불만의 겨울’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참패로 노동당이 사실상 괴멸 상태’라고 논평했다.

 

존슨 총리는 브렉시트를 정책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새로운 영국을 창조하는 미래지향적 어젠더로 제시했다. 유럽 본토와 단절함으로써 영국 고유의 정체성을 되살리고 자주적 의사결정, 자립주의 정신을 복원하게 된다고 역설했다. 대륙과는 다른 독립적 국가노선을 지켜온 영국의 오랜 ‘고립주의’ 전통을 상기시켰다.


 

존슨의 포퓰리스트적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됐다. 노동당의 큰 정부에 맞서 교육, 건강보험, 환경 등에 대한 정부 예산 확대 방안으로 맞불을 놓았다. 과감한 확대 재정으로 유권자에 대한 노동당의 포퓰리즘적 어필을 차단했다. 전통적 노동당 텃밭인 중부와 북부 지방에서 보수당이 승리하게 된 것은 유권자들의 속내를 읽은 존슨의 뛰어난 정치적 통찰력 때문이다.

 

존슨의 승리는 내년 미국 대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2016년 브렉시트 결정은 영국 사회를 지배해 온 엘리트층에 대한 근로계층의 반발로 볼 수 있다. 2016년 트럼프 당선 역시 워싱턴 기득권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견인했다. 이번 존슨의 승리는 기득권층과 지배 엘리트에 대한 일반 대중의 분노와 불만이 여전하다는 의미다. 미국 경제가 현재처럼 순항할 경우 분노와 공포에 바탕을 둔 트럼프 정치는 내년 대선에서도 가공할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이번 선거로 영국의 질서 있는 유럽연합 탈퇴가 사실상 확정됐다. 그러나 EU와의 무역협상은 갖가지 기술적 요인으로 인해 내년까지 마무리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탈퇴를 위한 준비기간이 촉박해 협상 기간 연장이 불가피해 보인다.

 

스코틀랜드 국민당의 약진도 눈여겨 보아야 할 사안이다. EU 잔류와 영국으로부터의 분리 독립이 국민당의 핵심 공약이다. 결국 또 한번의 분리독립을 묻는 국민투표가 예상된다. 노동당이 보수당에 경쟁할 대안 정당으로 존속할 수 있느냐도 관심거리다. 코빈의 반(反)유대적 발언이 이번에도 상당한 감표 요인으로 작용했다. 노동당이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제3의 길’과 같은 실용주의 노선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유권자로부터 계속 외면당할 수 있다. “무력한 야당 덕에 승리했다”는 언론의 평이 현재의 노동당 처지를 잘 대변한다. 온건한 중도좌파 노선으로의 회귀 여부가 노동당의 명운을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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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일자 : 2019-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