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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박종구의 中國 인물 이야기]<245>한탁주

  • 작성자:홍보실
  • 등록일2020-08-18
  • 조회수 : 684

정권 좌지우지한 남송 영종때 재상

한탁주(韓侂胄, 1152-1207)는 남송 상주 안양 출신이다. 자는 절부(節夫)로 북송의 재상을 지낸 한기(韓琦)의 5세손이다. 남송의 영종때 재상으로 정권을 좌우했다. 금과의 화의를 깨고 전쟁을 일으켰으나 승리하지 못했다. 이후 살해되었다.

 

모친은 남송 고종의 황후인 오씨의 여동생이다. 명군 효종이 황태자인 조돈에게 양위하니 2대 황제 광종이다. 우둔한 광종을 이황후가 좌지우지했다. 질투가 심해 광종이 아끼는 황귀비를 죽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심질(心疾)이 악화되었다. 이황후의 전횡에 황실이 동요했다. 황실의 최고 어른인 태황태후 오씨는 재상 조여우와 한탁주와 결탁해 광종을 내쳤다. 효종이 죽자 광종이 심질로 인해 상주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오씨는 증손인 황태자 조확이 대리토록 명했다. 이를 계기로 황태자가 즉위하니 영종이다. 영종의 비가 한탁주의 질녀다. 영종 즉위에 공을 세운 한탁주는 권력을 독차지하려 하였다.

 

 

그러나 재상인 조여우는 그의 인품을 하찮게 여겨 그를 멀리했다. 방어사(防禦使)라는 비교적 낮은 지위를 주었다. 권모술수에 능한 한탁주는 조여우를 모함해 1195년(경원 원년) 조여우를 내쳤다. 시강 주희도 파면하였다. 주필대, 유정, 왕난, 팽귀년 등 주자학파 59명이 관직에 등용되는 것을 금하였다. 1198년 주자학을 거짓 학문인 위학(僞學)으로 탄압하였다. 역사에서는 이를 경원위학지금(慶元僞學之禁)이라 한다. 명대의 사상가 이탁오는 주자학이 타격을 받은 것은 주희의 실책으로 평하였다. “도학이 화를 입은 것은 주희가 이를 자초한 것이다”라고 기록하였다. 한탁주는 이후 10년간 재상으로 권력을 독점했다. 뒤를 밀어주던 황후와 황태후가 차례로 세상을 떠나자 권력에 누수가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영종비 한황후의 사망에 큰 타격을 입었다. 나빠진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일환으로 애국시인으로 알려진 육유(陸遊)를 국사편찬의 직책에 추천했다. 육유는 집의 물건을 팔아야 할 정도로 삶이 곤궁했다.

 

 

숙적인 금나라 토벌을 추진한 것은 자신의 약화된 권력을 보전하려는 보신책이었다. 남송 효종과 금 세종간 화약으로 40년간 금과 남송은 화평을 유지했다. 금은 북방 유목민의 빈번한 남침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1194년 황하가 크게 범람하는 일이 발생했다. 엄청난 인적‧물적 손실이 불가피했다. 장기간 평화로 군사조직인 맹안‧모극의 군사력과 사기가 크게 저하되었다. 한탁주는 1205년 정무와 군사를 총괄하는 평장군국사(平章軍國事)가 되어 전권을 장악했다. 1206년 사천의 선무사 오희가 섬서에서 진공했다. 그러나 금나라는 선전했다. 금의 꼬임에 빠져 오희가 금에 항복하고 촉왕에 봉해지는 일이 일어났다. 1207년 오희가 부하에게 살해당하면서 양국의 전투는 일진일퇴하였다. 금은 전비 부담으로 남송은 전선의 불리로 탈출구를 모색해야 할 상황이었다. 양국은 다시 화평의 교섭에 나섰다. 금은 전비를 주로 조달한 산동 지방의 민정이 불안해지면서 남송과의 전쟁을 수행하는데 부담이 많았다. 금은 화평의 조건으로 개전의 책임이 있는 한탁주의 목을 요구했다. 이외에도 양국의 국경선인 회하의 남쪽 양회 땅의 할양, 세폐 증액 등이 포함되었다.

 

 

영종의 후비는 양씨로 그녀의 오빠인 양차산은 예부시랑인 사미원과 힘을 합쳐 한탁주를 제거하려 하였다. 사미원은 효종때 재상인 사호의 아들이다. 사미원과 양치산은 하진을 시켜 1207년 11월 옥진원이라는 곳에서 한탁주를 암살했다. 그의 목은 금으로 보내졌다. 1208년 양국은 화약을 맺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금이 점령한 회남지방은 남송에게 반환. 숙질 관계를 백질(伯姪) 관계로 변경. 세폐는 은 30만냥 비단 30만필로 증액. 남송은 전비배상금으로 300만냥을 금에게 제공. 금은 남송의 내부 분열을 꾀뚫어 보고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남송은 허약한 군사력이 만천하에 알려지는 꼴이 되었다. 금은 이후 혼란에 빠져 1234년 몽고족에 멸망했다. 사미원은 이종을 옹립해서 26년간 재상의 지위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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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일자 : 2020-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