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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박종구의 中國 인물 이야기]<252>가사도

  • 작성자:홍보실
  • 등록일2020-10-13
  • 조회수 : 473

남송말 재상 왕조몰락 앞당긴 간신

 

가사도(賈似道, 1213~1275)의 자는 사헌이고 호는 추학이며 절강성 태주 천태 사람이다. 이종(理宗)의 가귀비의 동생으로 남송말 재상을 지냈다.
 

남송 관료 가섭의 아들로 누이가 이종의 후궁으로 들어가 가귀비가 되면서 출세의 길에 들어섰다. 어릴때부터 비행을 저지르는 등 품성이 좋지 않았다.집안 덕에 음보로 가흥사창이 되었다. 이후 태상승, 군기감, 경호안무제치대사가 되었다. 1254년 동지추밀원사를 거쳐 1256년 부재상 격인 참지정사가 되었다.

 

몽고는 남송을 정벌해 중국을 지배할 계획을 세웠다. 몽고의 3대 칸인 헌종 몽케가 이끄는 벌송군이 남송으로 진격했는데 몽케가 진중에서 급서했다. 악주(鄂州) 공격을 책임진 몽케의 동생 쿠빌라이는 몽고로 회군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막내동생 아리크부가가 후임 칸을 선임하는 회의를 몽고의 수도 카라코룸에서 개최할 예정으로 불참시 경쟁에서 탈락할 수 있었다. 쿠빌라이와 가사도는 비밀리에 협약을 맺었다. 몽고로 돌아가야 하는 쿠빌라이가 철수시 남송군이 추격하지 않는다는 확약을 얻기 위해 가사도를 매수했다는 설도 있다. 싸울 의지가 없는 가사도가 쿠빌라이를 추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협약을 체결시켰다는 설도 있다. 여하튼 가사도는 도하중인 몽고군을 습격했는데 죽은 사람이 170여명에 불과했다. 가사도는 대승으로 조정에 허위 보고했다. 몽고군 철수에 환호한 조정은 엄청난 재물을 하사하고 재상에 기용했다. 바야흐로 가사도의 세상이 된 것이다.

 

  그는 권세를 이용해 많은 문화재를 수집했다. 서호 북쪽에 집을 하사받아 집방원(集芳園)이라고 이름을 짓고 그 안에 반한정(半閑亭)을 조성했다. 가사도는 상인을 통해 금나라 왕실이 보유한 많은 서화를 수집했다. 악주전의 승리를 계기로 무능하고 탐욕한 재상 정대전을 대신해 재상이 되었다. 재상이 되자 교육 투자를 늘렸고 유명한 주자학자를 대거 불러 조정의 요직에 기용했다.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부패한 장군들과 관료들을 대거 숙청했다. 특히 환관의 발호를 철저히 막았다. 외척의 영향력도 차단했다.

 

풍요로운 남송조차도 대몽고 전쟁은 국력을 소진시키는 일이었다. 엄청나게 늘어난 재정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정부가 미곡을 매입해 이익을 창출하는 화적 제도를 운영했는데 농민들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남송 정부가 화적으로 얻는 식량이 연간 800만석에 달했는데 대금 지불을 회자(會子) 어음으로 했다. 농민들은 회자 가격 하락으로 인해 이중의 고통을 겪었다. 가사도는 백성들에게 인기 없는 화적 대신 공전법(公田法)을 도입했다. 200묘 이상의 토지 가운데 1/3을 정부가 사들여 공전으로 삼아 그 수입으로 필요한 재원을 충당한다는 제도다. 당연히 대지주가 반발했다. 어음을 통해 매입해 지주의 부담이 더욱 가중되었다. 이로 인해 대지주와 중앙 관료와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그러나 대지주에 의한 토지 겸병을 막는다는 좋은 취지도 있음은 물론이다. 그가 후일 <간신전>에 들어간 이유도 이러한 갈등과 무관하지 않다.

 

원나라를 세운 몽고의 쿠빌라이는 중국 통일을 위해 1273년 다시 남하했다. 남송 공략의 최대 장애물은 군사 요충지인 양양이었다. 몽고군은 양양을 포위했는데 재상 가사도는 무슨 이유인지 원군을 보내지 않았다. 양양을 지킨 송군의 지휘자인 여문환은 남쪽을 향해 통곡했다고 한다. 결국 4년만에 번성이 함락되었고 양양을 더 이상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양양의 남송군은 몽고군에 항복했다. 몽고군의 공격이 격화되는 와중에도 가사도는 집방원에 한거하며 유흥과 도박 및 서화 감상으로 소일했다. 패전의 소식을 황제인 도종의 귀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차단했다. 1275년 2월 무호 전투에서 남송군은 대패했다. 정병 13만을 동원했지만 몽고의 군사력 앞에서는 무기력했다. 강화를 요청했지만 몽고군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가사도는 패전의 책임을 지고 해임되어 복건성의 장주에 유배되었는데 정호신에게 살해되었다. 정호신의 부친이 가사도에게 학대를 받아 그 원한을 갚은 것이다. 변소에 데려가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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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일자 : 2020-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