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열린총장실

[광주일보-박종구의 中國 인물 이야기]<244>효종

  • 작성자:홍보실
  • 등록일2020-08-11
  • 조회수 : 483

남송 2대 황제…왕조 기반 구축한 명군

 

효종(孝宗, 1127~1194)의 이름은 조신으로 남송 왕조의 2대 황제다. 고종의 뒤를 이어 왕조의 기반을 구축한 명군으로 금과의 강화조약으로 장기간 양국의 화평을 이끌었다.

 

북송 태조 조광윤의 차남인 조덕방(趙德芳)의 6세손이다. 수안희왕 조자칭의 아들이다. 고종은 아들이 어려 죽어 후사가 없었다. 조신을 태자로 삼아 1162년 6월 양위하였다. 금의 해릉왕은 남송을 타도하기 위한 벌송(伐宋) 작전을 진두지휘했다. 수많은 종친과 중신을 학살한 폭군으로 대송 전쟁 중에 부장인 완안원의에게 살해당했다. 동경 유수인 황족 완안옹이 5대 황제인 세종으로 즉위했다. 그는 남하한 금군을 철수시키고 남송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에 나섰다. 이와 같은 정세 변화속에서 효종이 즉위한 것이다.

 

효종은 상실한 하북 지방의 회복을 염원해 장준을 추밀사‧도독강회동서군마에 임명했다. 장준은 현 남경에 해당하는 건강을 근거지로 삼아 북벌을 감행해 안휘성 숙주를 탈환했지만 뒤이은 전투에서 패했다. 주전파가 밀리고 주화파가 다시 힘을 얻었다. 금의 세종은 변방인 상경 회릉부에서 연경으로 국도를 옮겨 중원의 정치 기반을 강화했다. 골칫거리인 거란족의 반란을 무마하는데 공을 들였다. 주모자를 제외하고는 관용을 베풀어 빠른 시일내 내란을 수습하였다. 효종도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익하다고 판단해 주화파에 힘을 실어주었다. 결국 1165년 송‧금 화약이 체결되었다. 종전처럼 국경선은 회하로 하되 기존의 군신 관계를 숙질 관계로 재정립했다. 세폐는 은 25만냥 비단 25만필을 20만냥, 20만필로 줄였다. 종전의 세공(歲貢)을 세폐(歲幣)로 바꾼 것은 송이 금에 대한 진공이 아니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금은 송나라 조상의 능묘가 있는 지역의 반환은 거부했다. 금 사신이 국서를 가지고 남송을 방문하는 경우 남송 황제가 일어나 받도록 되있는 것을 고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송에게는 다소 유리한 강화조약이었다. 이로써 1206년 양국이 대립하기까지 약 40년간 화평이 유지되었다.

 

남송은 안정된 대외 관계를 바탕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크게 발전하는 계기를 낳았다. 주희, 진덕수, 문천상, 육유 등 뛰어난 학자, 문인, 예술가들이 다수 배출되었다. 장강 등 풍부한 수자원을 바탕으로 농업생산이 크게 늘어났다. 상공업도 활성화되었다. 운수교통도 발달했다. 수도 임안(현 항주)의 번영은 과거 북송의 수도 개봉을 능가할 정도였다. 동전만으로는 늘어나는 화폐수요를 충족할 수 없어 지폐가 유행하였다. 지폐와 함께 은(銀)을 화폐로 사용하는 빈도가 점점 늘었다. 회자(會子)라는 어음이 유통되어 상공업 진흥에 크게 기여했다.

 

효종의 국정운영은 금과의 화평을 유지하면서 내치를 안정시키는 것을 우선으로 하였다. 금의 여러 차례 남침으로 국력의 소진이 컸고 망명 정부격인 남송 왕조의 기반도 취약했다. 효종의 치세는 큰 사건없이 진행되었다. 주화파와 주전파가 갈등을 빚기는 했지만 대금 화평 기조 자체는 흔들리지 않았다. 효종은 내심으로는 고토 회복을 희망한 주전파였지만 군사적으로 금에게 이길 수 없음을 잘 인식한 현실론자였다.

 

문제는 황실 내부에서 시작되었다. 효종이 퇴위하고 황태자인 3남 조돈에게 양위하였다. 빈약한 장남이 요절하자 차남 대신에 조돈을 황태자로 삼아 재위를 넘겨주었다. 아버지 고종을 본따서 살아 있는 동안 양위하기 위해 부친이 죽은 2년 후 아들에게 양위한 것이다. 후임인 광종은 우유부단한 인물로 주전, 주화에 대한 특별한 주관이 없었다. 암울한 황제로서 황실내 여자들간의 암투가 심해졌다. 송사에는 광종이 “후궁의 싸움을 안에서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광종비인 이황후는 질투심이 심한 여자로 두 살 연상인데 광종의 후궁인 황귀비를 죽이기도 했다. 남편이 태상황으로 물러난 효종과 만나지도 못하게 하였다. 외척을 대거 중용하는 등 국정에 깊이 개입하였다. 결국 고종의 황후인 오씨가 개입해 황태자 조확이 3대 황제로 즉위토록 하였다. 광종의 재위기간은 6년에 그쳤다.

 

비밀번호 :
· 수정일자 : 2020-08-11